이집트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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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피라미드

 

 

이집트의 피라미드

 

 

 

(쿠푸왕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고왕국 시대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까지 계속해서 건축되었다. 현재 이집트에 남아있는 피라미드는 보고된 것만 80기 이상이며, 학자에 따라서는 112기로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피라미드가 나일강 서안을 따라 남북으로 분포하고 있다. 피라미드는 독립 구조물이 아니라 건축물 복합체의 일부였다. 피라미드는 자체로서 무덤 역할을 하거나 무덤 위에 세워졌으며, 그 옆에는 장례와 제례에 사용되는 장제전이 있고, 강변까지 운하로 이어지도록 건축된 것이 대부분이다.

 

피라미드 건축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제 3~5왕조로, 이 시기를 '피라미드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후 피라미드 건축 점차 축소되다가 제 18왕조부터는 대부분의 왕묘가 암굴묘(岩窟墓)의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사카라(Saqqara)에 있는 제3왕조의 제2대 파라오 조세르(Djozer:재위 BC 2630~BC 2612 추정)'계단식 피라미드'로 건축가이자 재상이었던 임호텝프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처음에는 한 변이 63m이고, 높이가 8미터인 석조 마스타바(이집트 초기 무덤의 한 형태로, 아랍어로 직사각형의 구조물을 의미한다), 중앙에 깊이 28m의 수혈(堅穴)을 파고 그 밑에 매장실을 만드는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사가 확장되어, 결국 마스타바를 6단 포개 놓은 모양의 밑변 109×126m, 높이 62m의 계단 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 피라미드의 하부는 지하 복도와 방으로 이루어졌으며, 깊이 25m, 너비 8m의 중앙 통로 아래에는 아스완산() 화강암으로 만든 지하 매장소가 있다.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종교적으로는 헬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예로부터 존재했던 태양신 숭배가 피안(彼岸)의 신앙과 결부된 결과로, 계단은 죽은 국왕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태양신과의 결부는 후의 정통 피라미드의 출현으로 한층 긴밀해졌다. 피라미드 그 자체는 왕의 미라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그러나 음식물과 가지각색의 물품을 진열하여 제사를 지내는 장소도 필요했다. 그래서 피라미드 북측에 장제전(葬祭殿)이 건조되고, 다시 동쪽에 세드제()의 의식을 행하는 신전·소신전·중정(中庭), 남쪽에는 제단이 있는 대중정이 축조되고 그것들을 높이 10m, 동서 277m, 남북 545m의 사각형의 주벽(周壁)으로 둘러 장대한 묘소를 형성하였다. 이것이 전형적인 '피라미드 복합체'의 모습이다.

 

측면이 평면인 정통 피라미드는 제4왕조로 들어와 출현한다. 초대 파라오인 스네프루(Sneferu:재위 BC 2612~BC 2589 추정)3개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그 중 사카라의 남쪽 다흐슈르(Dashur)에 세워진 높이 97.5m, 밑변 189m, 사면각도는 처음에는 54°32 ', 중간쯤에는 43°21 '이 되는 '굴절(屈折)피라미드'가 있다. 특이하게도 중간 위로는 기울기가 달라지며, 아래쪽이 위쪽보다 더 가파르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보다 4각 뿔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 역시 스네프로가 세운 메이둠(Meidum)의 피라미드는 현재 2단 탑의 모양으로 남아있으나, 본래는 8단의 계단 피라미드를 만들고, 단의 부분을 돌로 메운 뒤 석회암으로 덮어 순수한 4각뿔 형태로 완성시킨 것이었다. 일설에는 제3왕조 말, 스네프루의 선왕 파라오 후니(Huni)가 착수하고 스네프루가 완성시켰다고도 한다. 높이 92m, 밑변은 144m, 사면(斜面) 각도는 51°52 '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4각뿔로 설계, 시공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피라미드는 다흐슈르에 있으며, '() 피라미드' 혹은 '붉은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다. 높이 97.5m, 밑변 213m, 사면각도 43°36 '이므로 경사가 완만하다. 4왕조로 들어오자 장제전은 피라미드의 북측에서 동측으로 옮겨지고, 사막가에 새로이 하곡신전(河谷神殿)이 만들어져 양자는 참배로(參拜路)로 이어졌다.

 

 

 

 

 

 

 

다음 파라오 쿠푸(Khufu:재위 BC 2589~BC 2566 추정)는 카이로 남서쪽 15km에 위치한 기자(Giza)에 최대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 이것은 대피라미드 또는 제1피라미드라 일컬어지며, 높이 146.5m(현재 137m), 저변 230m, 사면각도는 51°52'이다. 각 능선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오차는 최대의 것이라도 5°30'에 지나지 않을 만큼 극히 정교한 것으로, 피트리에 의하면 평균 2.5t의 돌을 230만 개나 쌓아 올렸다.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로서 그 장대한 규모와 간결한 미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다. 내부구조는 복잡해서 독일의 보르하르트에 의하면 계획이 2번 변경되었다고 한다. 북측의 지면에서 약간 위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 그대로 하강하면 암반 밑에 설치된 방에 도달한다. 이곳이 제1차 계획의 매장실이고, 그 위에 있는 통칭 '왕비의 방'이 제2차 계획의 매장실이다. 그리고 제3차 계획에 의해 피라미드는 완성되었다.

 

1피라미드 남서쪽에 파라오 카프레(Khafre:재위 BC 2558~BC 2532 추정)의 제2피라미드가 있다. 높이 136m, 밑변 216m, 동쪽에 있는 장제전에 450m의 참배로가 뻗어 하곡신전에 이른다. 유명한 스핑크스는 하곡신전에 가까운 참배로 북쪽에 위치한다. 기자에는 그밖에 파라오 멘카우레(Menkaure:재위 BC 2532~BC 2504 추정)의 제3피라미드와 왕비, 혹은 왕족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피라미드 6기가 있다. 기자의 피라미드 중에 카프레의 피라미드만이 화강암 위를 덮여 표면을 매끄럽게 했던 석회암이 일부 남아있어 본래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5·6왕조에는 피라미드의 규모가 작아졌다. 아부시르(Abu Sir)·사카라에 있는 5, 6왕조의 피라미드는 6580m의 밑변은 가진 것이 많다. 그 중 제5왕조 최후의 왕인 우나스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왕조의 페피 1, 메르엔라, 페피 2세의 것에는 매장실 벽면에 왕의 사후 행복을 기원하는 각종 주문, 소위 '피라미드 텍스트'가 일면에 새겨져 있다. 7왕조의 이비왕을 마지막으로 피라미드는 일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제11왕조에 이르러 다시 나타났다. 12왕조에 속하는 리슈트(Lisht)에 있는 아멘엠헤트 1(Amenemhat I:재위 BC 1991~BC 1962), 센우스레트 1(Senusret I:재위 BC 1971~BC 1926)의 것, -라훈(el-Lahun)있는 센우스레트 2(Senusret II :재위 BC 1897~BC 1878)의 것, 하와라(Hawara)에 있는 아멘엠헤트 3(Amenemhat II:재위 BC 1860~BC 1814)의 것이 유명하다. 그러나 규모도 작고, 또 햇볕에 말린 벽돌로 지었기 때문에 심하게 파괴되었다.

 

피라미드를 건조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거운 석재를 필요한 높이까지 운반하는 일이었다. 당시에 어떠한 방법으로 석재를 운반했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많은 학자들이 피라미드 측면에 직각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석재는 썰매로 운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정한 높이마다 핵재(核材내장재·전재(塡材외장재의 순으로 쌓아놓고, 피라미드가 높아짐에 따라 경사로도 높아졌다. 이 경우 경사로의 기울기는 일정해야 하므로 길이는 점차 길어진다. 정상까지 다 쌓고 나면 위에서부터 외장을 완공시켜가면서 서서히 경사로를 낮게 하여 완성시키는 방법을 취하였다. 외장은 정성껏 시공되고, 석재는 종이 한 장 끼워지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게 쌓아졌다. 완성에 걸린 연대에 대하여 헤로도토스는 '기자의 피라미드'20년이라 적었으나, 실제로는 더 짧은 기간으로 생각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두산백과)